해맑게 웃는 가온을 고야는 들어 안았다.
고야: 녀석.. 고맙다 딸아!
가온: 아부지! 아부지는 떠나지 마요!
고야: 그래! 언제나 우리 세식구 함께 하자꾸나!
가온 어미: 아이가 나이가 차서 무겁습니다. 몸을 생각하셔야죠.
고야: 괜찮소. 딸이 아비에게 안기는데 이깟 상처쯤이야. (쓰윽 얼굴을 내밀며) 내겐 최고의 의녀가 계시기도 하고...
가온 어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가족이 된 세 사람은 농사를 시작하며 행복한 시간을 이어갔다.
고야는 농사를 짓고 남의 밭 일을 도와 품삯도 벌며 전쟁이 끝났는지에 대한 소식도 알아보곤 했다.
전쟁이 잦아들고 대부분을 고구려가 통일하려는 듯 승전보를 확인했지만 잔당들의 약탈과, 침범으로 고향땅으로 갈 수 있는 시기를 잡기에는 어려웠다.
가온 어미: (바늘질을 하다 고야의 표정을 보고) 서방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고야는 가온 어미의 말에 살짝 놀랐다.
집어들고 있던 바구니를 살펴보며
고야: 아니오.. 바구니를 보고 있다가 딴 생각이 잠시 들었지 뭐요.. 하하... 그나저나 가온이는 안 추우려나.. (문을 열어 건너방을 본다)
가온 어미: 날이 그리 차지 않아 괜찮을듯 하네요. 딴 생각은.. 어떤 생각이셨어요?
고야는 가온 어미를 바라보다 슬그머니 옆으로 가 가슴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고야: 가온이에게 동생을 만들어 줄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하여...
가온 어미: (손을 살짝 치며) 짖궂으셔.. (가슴을 만지는 고야의 손을 그대로 둔다) 가온이 동생이라..
고야: 바느질도 다 하신 듯 하니.. 오늘은 이만 주무십시다.
그날 새벽.. 고야는 물 한 잔 마시러 나와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속에 남은 부모님의 얼굴을 땅바닥에 그려보았다.
고야: 하아..
몇 달이 지나고..
뜨거운 여름이 사람들의 땀을 연신 뽑아내고 있었다.
고야는 남의 밭 일을 하러 나와 연신 땀을 흘리며 수확을 거들고 있었다.
작업장: 자 이제 수확을 다 했으면 새참 먹읍시다. 새참 먹고 다시 땅을 쏙아야 하니 어여 움직이시오!
이때 농지에 모여 일을 하던 사람들이 어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돌렸다.
농민1: 이게.. 무슨 소리지...
농민2: 땅이 막 울리는구만!!
고야는 잊고 있었지만 익숙한 소리였다.
고야: (농민들을 향해 소리친다) 모두 몸을 피해요!!! 말발굽 소립니다!!!
고야는 들고 있던 곡괭이를 든 채 집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족을 잃을 수는 없어!!'
산자락으로 오르기 시작한 고야는 자신의 소리침에도 떠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있던 농민들이 도착한 야만족 병사들에게 하나씩 쓰러지는 것을 멀리서나마 확인하게 되었다.
고야: 젠장...
고야는 야만족 병사들의 방향을 파악하기 위해 몸을 숨긴 채 지켜봤다.
다행히 농지를 가로질러 가며 마을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본 고야는 바로 집으로 조용히 뒤를 살피며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가온 어미는 온 몸이 땀에 젖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고야를 보고 놀라 말리던 나물을 놔두고 고야를 맞이했다.
가온 어미: 아니.. 무슨 일이셔요. 아직 귀가하시기엔 이른데..
고야: 허헉.. 허헉.. 허헉.. 무.. 물좀..
가온 어미는 바로 물을 떠다 고야에게 건넸다.
고야는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는 숨을 진정시켰다.
고야: 수확하던 중에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오.. 야만족이.. 농민들을.. 크윽..
가온 어미: 농민들을 어찌 했다는 말씀이셔요.
고야: 그 밭에 있던 농민들이 모두 야만족들에게 죽음을 당했소....우.. 우리.. 혹시 모르니 잠시 피해있는게 좋겠어요.
가온 어미: 여긴 산중이고.. 말로 올라오기도 힘든 곳이잖아요.. 괜찮지 않을까요?
고야: 놈들은 야만족이오..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는 놈들이에요.
고야는 그 날 이후로 멀찌감치 망을 보러 다녀오기도 하면서 야만족들의 행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산 반대쪽까지 오가며 피난처도 만들어뒀지만.. 마을을 약탈하고 떠난 줄 알았던 야만족들은 그 수가 줄어들은채 다시 나타나 산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야는 가온 어미와 가온을 데리고 만들어둔 피난처로 옮기고.. 집을 폐가처럼 꾸며놨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야만족 일당들은 고야 가족과 맞딱뜨렸다.
고야: 이놈들!! (삽을 든 채) 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냐!!
야만족: 먹을 것을 내놔라!
고야: 직접 길러 먹거라! 내 씨앗은 내어 줄 수 있으니!!
야만족: 좋은 말로는 안되겠군! 죽어라!!
고야는 달려드는 야만족을 삽으로 때려 눕히며 뒤지지 않는 실력을 뽐냈다.
가온: 아부지!!!!
가온 어미: 가온아! 안된다!
가온 어미는 가온을 붙잡아 끌어안은 채 고야가 싸우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호미를 옆에 챙겨두었지만 가온을 지키는 것이 먼저인 상황이었다.
야만족: 이 놈! 그냥 농민 같은게 아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야만족 수가 일곱.. 고야는 혼자...
점점 힘에 부쳐가기 시작했고....
'부욱'
고야: 으윽!!
고야는 옆구리를 칼에 찔리며 주저 앉았다.
야만족을 셋을 처리했지만.. 그 이후 힘에 부치기 시작한 결과였다.
가온 어미는 몇 시간 전 고야가 건넨 약을 아이의 입에 조금.. 자신의 입에 반을 털어넣었다.
몇 시간 전
고야는 가온 어미에게 물약을 하나 건넸다.
가온 어미: (건네 받으며) 이게.. 뭡니까?)
고야: 내.. 전쟁터에 나가겠노라고 입대를 천명했을 때... 우리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약이오. 믿거나 말거나라면서 위험한 순간이 오면 먹으라면서... 2개를 만들어주셨는데.. 내가 하나.. 당신과 가온이가 하나를 나눠 먹음 좋을 듯 해서요...
가온 어미: 무슨 효과가 있는 겁니까?
고야: 죽은 척 할 수 있다고 했소.. 마시면 수 분내에 심장이 잠시 멎은 것 처럼 되고... 다시 수분이 지나면 살아난다 하셨소.
가온 어미: 그런 약이 있습니까?
고야: 어머니가 외지인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외지인에게 받은 거라 합디다. 저에게 주셨지만.. 나도 일말의 희망으로 건네는 것이니... 혹여 죽은 척을 잘하면 살아갈 수 있지도 않겠소.
가온 어미: 뭔가 좀..
고야: 무책임해보여도 수가 없소. 나 혼자 야만족들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울테고..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해보자는 의미이니.. 나쁘게 보지 말아주세요.
가온 어미: 나쁘게 보다니요. 서방님도 고민하다 내어주신건데.. 다만.. 이런 약을 처음 들어서 그렇습니다.
고야가 가온 어미의 손을 잡고
고야: 살아갑시다. 혹여 놈들이 이곳에 와 해꼬지라도 하면.. 어떻게든 살아서.. 우리 부모님 계신곳으로 가십시다.
그렇게 건네 받은 약을 가온 어미와 가온이 먼저 마신 상태였고.. 곧이어 옆으로 가온을 안은 채 쓰러졌다.
고야: 부인!!!!! 온아!!!!!
고야는 또 한 번 어깨에 칼이 그어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야만족들은 정말 배가 고팠는지 고야가 쓰러지자 먹을 것들을 챙기며 입에 쑤셔넣기 바빴다.
고야는 힘겹지만.. 가온 어미와 가온에게로 기어가.. 얼굴을 확인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고야 역시 가지고 있던 약을 입에 털어넣고 지체없이 넘겼다.
고야: 다시 눈을 뜨면.. 꼭.. 꼭.. 다시 만납시다.. 내가.. 내가 꼭..
고야의 고개가 아래로 떨궈지고...
한참 배를 불리던 야만족들은 고야 가족이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하곤 그대로 둔 채..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물론... 고야 가족들이 옮겨놓았던 먹거리들을 모두 챙긴채...
밤이 찾아온 고야 가족의 피난처...
가온이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가온이 피를 흘린 채 옆에 쓰러져있는 고야를 보고 흔들어대며
가온: 아부지!! 아부지!!! 정신 차려보세요 아부지!!
가온의 외침에 가온 어미도 눈을 떴다.
가온 어미: 응? 저.. 정말로.. (가온과 고야를 동시에 본다) 아이고! 서방님!! 여보!!!
가온과 가온 어미는 고야의 상태를 살피며 고야를 깨우기 위해 노력했다.
가온 어미가 고야의 맥을 짚어본 후...
가온 어미: 온아.. 아버지 살아계신다. 어서 다친 곳을 살피고 치료를 하자꾸나!